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국 해군 (문단 편집) === 역사 === [[파일:external/burritojustice.files.wordpress.com/wwii-royal-navy-list-ships-sunk.jpg]] KGV급과 [[라이온급 순양전함|라이온급]]이 전부 건조중인 함정들로 분류된 [[1939년]] [[7월 19일]] 데일리 텔레그레프 기사의 영국 해군 해상 전력 안내도로, 붉게 칠해진 배들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상실한 배들이다.[* 영국 해군이 왜 강했는지 잘 알 수 있는 대표적인 그림이라 볼 수 있다. 식민지배를 가능하게 만든 원동력이다.][* 손실 주력 군함은 [[후드(순양전함)]], [[리나운급 순양전함|리펄스]], [[아크로열(항공모함)]], [[커레이저스급 항공모함|커레이저스와 글로리어스]], [[킹 조지 5세급 전함|프린스 오브 웨일스]] 등이다.] [youtube(2iwoh2pwpv8)] --[[무기대여법|왜 F4U 콜세어가 있는지는 묻지 말자]]-- 영국 해군은 영국에서 최초로 탄생한 [[국군]]으로 [[1707년]]에 창설하였다. [[연합왕국]]이 설립된 'Acts of Union 1707' 후 [[잉글랜드 왕국|잉글랜드]] 해군과 [[스코틀랜드 왕국|스코틀랜드]] 해군이 합병해 하나의 거대한 왕립 해군이 들어섰다. 이후 [[자본주의]], 국제무역, 산업기술이 발달하면서 왕립 해군도 급격한 팽창기에 들어섰다. [[18세기]]에 이르면 왕립 해군은 당시 유럽의 [[초강대국]]이었던 [[프랑스 왕국]]에게서 [[영국 해협]]을 지켜주는 "[[나무]]의 [[벽]]"이 되었다. 1702-03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때 [[네덜란드 해군]]과 함께 프랑스, [[스페인 해군]]에 맞섰는데, 이때 [[지브롤터]] 기지를 얻게 된다. 이 전쟁에서 크게 활약한 덕에 왕립 해군은 위신 있는 해군 [[조직]]으로 떠올랐으며, 영국 역시 유럽의 [[열강]] 중 하나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1800년대의 [[나폴레옹 전쟁]] 때도 왕립 해군은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영국은 대부분의 자원을 해군에 투자하여 프랑스 침공을 막는 전략을 택했다.[* 하지만 그만큼 고된 일을 하는 해군 징집은 당시 기피 대상이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해군 장병들로 이루어진 프레스 갱(Press gang)이라 불리는 --[[긴빠이]]--납치조직을 만들어 --[[아쎄이]]--길거리의 남성들을 닥치는 대로 신병으로 징집한 흑역사가 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6c1bXBXQa0g|#]] --[[해병문학]]의 기원-- 이는 심지어 현역 영국 국회의원에, 멀쩡히 돌아다이던 미국 상선의 선원들, 그러니까 '''[[미국인]]'''까지 징병하는 막장으로 치달았고, [[미영전쟁]]의 원인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당시 왕립 해군은 유럽 대륙의 침공을 막는 동시에 함대를 외국 바다로 보내 힘을 투사하는 것도 가능할 만큼 막대한 조직이었다. 특히 적의 해상 교역로를 방해하는 게 핵심이었기에, 이 시기 왕립 해군은 거대한 1급 전열함 뿐 아니라 작고 민첩한 함선들도 계속 유지했다. [[트라팔가 해전]]에서 영국의 전설적인 제독 [[호레이쇼 넬슨]]이 승리를 거두면서 프랑스의 영국 침공 야욕은 사실상 꺾이고 말았다. 이후 영국은 바다에서의 전략적 우위를 바탕으로 더 여유로운 전쟁 수행이 가능했다. [[19세기]]는 [[대영제국]], 즉 [[팍스 브리타니카]]의 시대였다. 대략 [[1914년]]까지 영국의 절대 우위가 지속됐다고 추정된다. 이 시기 왕립 해군은 '1>2+3'(1위의 해군이 2,3위의 해군을 합친것보다 많은 수의 [[함대]]를 운용하여 [[제해권]]을 장악한다는 것)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한 압도적인 해군을 보유하며 전세계의 바다를 재패했다. [[드레드노트급]]의 개발을 통해 근대적인 전함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또 [[독일제국|독일]], [[미국]] 등 떠오르는 열강들과 치열한 [[건함 경쟁]]을 펼쳤다. 하지만 이 무렵에도 이미 [[독일 제국 해군]]과의 건함 경쟁에서 압박을 느끼고 있었고[* 당시 [[독일 제국]]은 [[빌헬름 2세]]가 건함 정책을 마구 밀어붙이며 카이저마리네의 규모를 끝없이 불리고 있었고,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엔 영국 해군 다음으로 규모가 큰 대함대가 되어 있었다.다만 이런 상황에서도 영국>독일+미국 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경제적 압박을 견디다 못해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게 된다. 군축 조약 이후에도 전세계 최대 [[해군력]]을 유지했다.[[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900여척에 이르는 거대한 전력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다. 이 시대에 대영제국을 유지하는 것은 전 세계에 널리 퍼진 [[식민지]] 항구들끼리 촘촘히 이어진 물류 수송 루트였다. 대영제국은 곧 해상 교역이었으며, 해상 교역 없이 제국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영국은 질적 우위보다는 수적 우위로 패권을 보장하는 방법을 선호했던 것이다.[* 물론 질적으로 떨어졌다는건 전혀 아니다. 오히려 몇세기동안 세계를 배타고 누볐었기 때문에 항해술이든 전투능력이든 매우 우수했다. 여담이지만 프랑스가 소수정예 해군을 지향하며 우수한 군함을 건조하면 그걸 나포해서 A급 선박으로 굴렸다...] 그러나 대전이 끝나고 대영 제국의 붕괴로 경제난을 맞이하면서 해군은 크게 축소되었다. [[냉전]]이 찾아오면서 소련의 잠수함을 막는 역할에만 집중하여 수상 전력에서는 [[경항모]] [[인빈시블급]]을 도입하고, 수직이착륙전투기 [[해리어]]를 함재기로 쓰게 된다. 한때 전세계로 힘을 투사할 수 있었던 대영제국 해군은 이미 없었다. [[포클랜드 전쟁]]에서 [[아르헨티나]]를 물리치면서 저력을 드러냈지만, 그건 장비나 신기술이 아니라 역사와 실전 경험으로 다져진 영국 [[수병]]들의 전문성 덕분이었다. [[1999년]] SDR(국방 전략 리뷰)은 향후 왕립 해군의 방향에 전환점이 됐다. 포클랜드 해전 때문에 영국은 경항모의 한계를 뼈저리게 실감하게 됐고, 안정적인 힘의 투사를 위해서는 다소 무리하더라도 거대한 정규 항모를 획득할 필요가 있다는 합의가 모이게 됐다. 여기서 탄생한 것이 바로 [[퀸 엘리자베스급 항공모함]]이다. 또 [[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왕립 해군은 수십 척의 소형 호위함과 구축함으로 대함대를 이루었으나, 수적 우위는 더 이상 현대 해군 교전에서 우위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날 영국이 주력하고 있는 [[아스튜트급]] SSN, [[데어링급]] 방공 구축함, [[26형 호위함]] 등은 기존의 '작은 호위함과 구축함'에 치중했던 왕립 해군의 건함 계획과 판이하게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예전과 같이 수적 우위에 중심해 항모 타격 전단을 편성할 수 없으니, 소수의 고성능 전투함을 편성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1천 5백톤 미만의 전투함 비중을 줄이고 있는데, 2천톤급의 리버급 배치2 원양초계함과 같이 해외 [[속령]] 방위나 어업 활동 보호에 쓸 수 있고, 유사시에는 대잠 [[헬기]]를 탑재해 저강도 호위 임무까지 수행할 수 있는 함선의 건조가 대표적이다. 함선 숫자는 점차 줄어들지만 각각의 능력을 향상시켜 질적 향상에 주력하는 것이다. 한편 냉전이 끝나면서 유럽에는 "Peace dividend(평화 배당금)" 시대가 찾아온다. 영국 역시 유럽의 [[군축]] 추세에 참여했으며, 이 기조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긴축 재정 때문에 더욱 가속화 됐다. 다만 [[2012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 [[유로존 위기]] 때문에 전반적인 유럽군[* [[러시아]]를 포함한다]이 심각한 투자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터라, 영국의 지역 방위 위협 수준은 여전히 군축 이전과 비슷한 수준이다. 역사적 사실로 알아둬야할 것은 영국 해군은 해군으로써 엄청난 경험을 쌓았고 이는 각국 해군에게 전파되었다는 점이다. 근현대 해군은 사실상 영국 해군에서 정립되었다고 해도 될 정도이다. 사소하게는 수병과 장교들의 복식([[세일러복]], 흰색 하정복/검은색 동정복 등)부터 크게는 [[제해권]] 장악과 같은 함대 전략까지 영국 해군이 영향을 끼치지 않은 부분을 찾기 어렵다. 천하의 [[천조국]] 미국 해군도 대부분 영국 해군으로부터 따다 배꼈다고 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